만나의 모양이 주는 구속 교훈
출 16:14-15, 3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요 6:48-50에서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만나의 모양에 담긴 예수님의 모습을 조명해 보고, 그 안에 담긴 구속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만나는 작고, 둥글다.
출 16:14에서 “..작고 둥글며..”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만나는 작고 둥글게 생겼습니다. 먼저 만나가 작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작은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미 5:2에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시하고 작게 보는 변두리 갈릴리에서 성장하셨습니다(요 1:46). 막 6:3에서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예수를 배척한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가정 환경도 극히 가난했습니다. 하늘에 계셨던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둥글게 생긴 만나는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나타냅니다. 눅 23:34에서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당신을 멸시하고, 때리고,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신 온유한 분입니다. 마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서 실천하는 제자만이 타락하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 삶의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만나는 깟씨 같다.
출 16:31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깟씨’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1년생 풀의 작은 씨앗입니다. 땅에 뿌려지면 보이지도 않는 작은 씨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푸르른 풀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씨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작은 모습으로 오셨지만,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요 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 6:63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고, 생명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생명력이 넘쳐나야 합니다. 찬송을 해도 생명력이 넘쳐나야 하고, 기도를 해도 생명력이 넘쳐나야 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생명력이 넘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히 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삶도 언제나 생명력 넘치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론> 만나는 희다.
출 16:31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희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나가 희다는 것은 무죄하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히 4:15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더 나아가 그 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흠도 티도 없는 온전한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후 5:21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무죄하신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벗고 흰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흰옷을 끝까지 지키며 보존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흰 옷을 더럽히지 않고 끝까지 보존한 성도만이 마지막 날에 주님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 19:14에서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날이 갈수록 어둠의 권세가 세상을 뒤덮는 이 때에 말씀과 기도로 흰 옷을 지키고 보존하시므로, 마지막 날에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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