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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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 1:18-19 오늘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영광의 날인 동시에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이자 고난주간의 절정은 성금요일 주님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의 의미를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엡 1:7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으로도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마 9:2에서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

생명의 양식 2026.04.05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을 부르시며창 3:8-9 하나님이 인류에게 최초로 한 질문은 ‘네가 어디 있느냐’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처한 신앙의 현주소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창 3:9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어디 있느냐’는 어떤 부르심일까요? 첫째, 자기 자리(위치)를 떠난 자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선악과 아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창 2:17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엄히 말씀하셨기에, 그들이 그곳에서 뱀과 대화 나눌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창 2:15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

생명의 양식 2026.04.05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롬 14:17-19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 드리며, 봉사하며,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골 1:18에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엡 1:23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교회는 세상의 단체와 모임과는 질적으로 다른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를 잘 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교회를 어떻게 섬길까요? 첫째, 교회를 자랑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교회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표현은 교회에 대한 자랑으로 나타납니다..

생명의 양식 2026.04.05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시 62:1-2 시 62편은 다윗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쓰인 시입니다. 많은 사람은 갑작스러운 환난을 만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시 62:1에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다윗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여기 ‘잠잠히’는 히브리어로 ‘두미야’입니다. 그 뜻은 ‘침묵, 고요, 조용히 기다림’입니다. 시편 62편의 저작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윗의 삶에 있어서 가장 괴롭고 참담한 시기였던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이 누구입니까? 삼하 3:3에서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생명의 양식 2026.04.05

끝날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끝날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창 19:12-17 눅 17:28-30에서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지막 때는 롯의 때와 같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살던 소돔성은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하였으며 심지어 남색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소돔성의 롯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쌌습니다(창 19:4). 그리고 창 19:5에서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

생명의 양식 2026.04.05

본래 사람은

본래 사람은창 1:26-28 세상에서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사람을 생각하는 존재, 공동체적인 존재, 이성적인 존재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창 1:26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는 실체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실체와의 유사함(비슷함)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중요한 면에서 분명히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입니다...

생명의 양식 2026.04.05

앗수르의 두 번의 침공

앗수르의 두 번의 침공왕하 19:14-19 남 유다 13대 왕 히스기야는 성전의 회복과 예배의 회복 그리고 나라의 우상을 타파하므로 세속주의에 빠졌던 나라를 다시 신본주의 국가로 세운 왕입니다. 왕하 18:6에서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견고해 보이던 히스기야의 신앙도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앗수르의 두 번의 침공과 그 침공을 대응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을 통해, 성도가 삶의 위기와 어려움을 어떻게 신앙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앗수르 1차 침공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온전히..

생명의 양식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