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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4. 4. 15. 13:48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고전 15:35-44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엡 1:7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라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함께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고전 15:17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반드시 죄와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 고전 15:35에서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2천년 전 사람들도 죽은 사람이 어떻게 부활하며, 부활한 몸은 과연 어떤 몸일까 하는 것을 궁금해했습니다. 그 답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몸으로 부활할까요?

 

1.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전 15:42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도는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합니다.

부활하기 전에 몸 곧 현재의 우리 몸은 썩을 몸입니다. 그래서 1주일만 씻지 않아도 몸에서 썩는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사과 나무에 사과가 아름답게 열려 있습니다. 그 사과를 1년 동안 따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아름답게 그대로 있습니까? 결국 썩어 없어집니다. 그래서 롬 8:21에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사람 뿐 아니라 죄악 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썩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한 성도의 몸은, 썩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고전 15:50에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도는 썩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나팔 소리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합니다. 고전 15:52에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즉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선포될 때 부활과 변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전 15:43 상반절에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도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여기 ‘욕된 것’은 헬라어‘아티미아’로 ‘수치, 치욕, 불명예’라는 뜻입니다. 왜 사람에게 수치와 치욕과 불명예가 찾아옵니까? 죄 때문입니다. 수치와 치욕과 불명예는 모두 죄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욕된 몸 곧 현재의 우리 몸은 죄와 떨어질 수 없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롬 7:19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사도 바울이 탄식했듯이, 죄악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현재의 우리 몸은 죄와 떨어질 수 없는 몸입니다. 그런데 이 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뀔 때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빌 3:21에서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죄와 떨어질 수 없었던 현재의 우리 몸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주의 재림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강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전 15:43 하반절에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도는 강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여기 ‘약한 것’은 헬라어 ‘아스데네이아’로 ‘병, 나약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 몸은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나약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도 이기지 못하여 감기로 설사로 2,3주를 앓아야 하는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성도의 몸은, 어떤 바이러스도 이길 수 있고 어떤 병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즉 나약한 몸에서 강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고전 15:43에서 ‘강한 것’은 헬라어 ‘뒤나미스’로 ‘권능’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6:14에서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그의 권능’ 곧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할 때 ‘권능’이 바로 ‘뒤나미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믿으면, 이 세상 두려울 것 없고 어떤 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다시 강하게 살아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전 15:44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현재의 우리 몸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 육의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영육을 가지고 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요 20:19에서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누가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은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시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시공간에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사랑하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도 생각하는 즉시 그 곳에 우리의 몸이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것을 확신하시고, 날마다 부활의 주님 변화의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이 땅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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