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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생명과 바꾼 코레아 우라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3. 3. 20. 01:35

생명과 바꾼 코레아 우라 

32:7, 11:24-26

 

2023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라고 시작하듯이,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정신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독립 운동가들의 선구자와 같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출생

안중근은 187992일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안태훈과 어머니 조마리아(조성녀)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안중근은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잘 탔고, 사냥을 잘 했습니다. 안중근이 17살 때, 친구들이 번개입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 이유는? 누구 앞에서나 바른 말을 잘 하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뚝심 있게 밀어 부친다 해서 지어 준 별명입니다. 그리고 안중근의 가문은 무과 급제자만 7명이나 배출한 유명한 가문이었습니다.

 

2. 안중근이 의병이 된 계기

부유한 환경에서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자란 안중근을 의병으로 만든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고종의 강제 퇴위 사건입니다. 일제는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뒤 1906년에는 통감부를 설치하였습니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서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리에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방해로 세 명의 특사는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이준은 자결하였고, 세 명의 특사가 헤이그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운 헐버트 선교사는 아예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76월 헤이그 밀사 사건을 꼬토리 잡아 1907719일 고종을 강제 퇴위 시켰습니다. 그리고 안중근을 의병이 되게 한 두 번째 사건은, ‘군대의 강제 해산입니다. 190781일 오전 9시 한국군 해산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와 함께 한국군 해산에 대한 조서를 제멋대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세가와와 총리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병무 세 사람이 아무 힘도 없는 순종의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국가주권의 최후 보루였던 군대가 해산됨으로써 수족이 잘린 우리나라는 제대도 저항도 못해 보고 일방적으로 점령을 당하여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두 사건이 안중근을 의병으로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생명과 바꾼 코레아 우라

의병이 된 안중근은, ‘코레아 우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기로 결단합니다. ‘코레아 우라는 러시아 말로 대한민국 만세라는 뜻입니다. 안중근은 19099,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안중근은 우리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나라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리고 190910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탕탕탕세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혹시 총에 맞은 인간이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까봐 안중근은 다시 앞서가는 자들을 향하여 세 발을 더 쏘았습니다. 이 때가 오전 930분입니다. 저격 직후 러시아 헌병들이 덮치자 안중근은 권총을 떨어뜨리고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곧장 일어나서 하늘을 향해 대한민국 만세라는 뜻의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를 크게 세 번 외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습니다. 훗날 공판 과정에서 재판장이 이토를 쏜 뒤에 그 자리에서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었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의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의 유지에 있었고, 이토를 살해하기에 이른 것도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으로, 아직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죽여도 자살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도주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안중근은 예상했던 목적을 달성할 기회를 얻기 위해 거사한 것이므로 결코 도주할 생각이 없었다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안중근은 32세의 나이로 1910326일 중국 요녕성 여순에 있는 감옥 교수형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애국 애족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입니다. 두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에서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라고 유언하고 있듯이, 안중근 의사는 하나님 계신 천국을 사모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생명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애국 애족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실천할 수 있습니다. 11:24-26에서 “(24)믿음으로 모세는..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모세와 같이 안중근 의사도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된 안중근 의사의 애국 애족의 정신을 본받아서 우리 모두도 대한민국의 통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더 정직하게 충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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