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다가 주는 교훈 >
삿 11:4-11
입다는 이스라엘의 8번째 사사입니다. 삿 2:16에서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사사는 이스라엘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세워 주신 구원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왜 위기를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입다를 사사로 세우셨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은 암몬으로부터 18년 동안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삿 10:6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삿 10:7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방 나라에 이스라엘을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학대를 당하였습니다. 삿 10:8에서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 팔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학대를 당하였고’는 ‘으깨다, 눌러 부수다, 깨뜨리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라차츠’의 능동태 강조형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자가 먹이를 덮쳐 쓰러뜨린 다음 그것을 갈기갈기 찢는 것처럼, 블레셋과 암몬이 이스라엘을 아주 잔혹하고 끔찍하게 압제하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한 단어입니다. 이러한 학대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삿 10:9).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것을 통하여 자유와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고통과 고생 즉 곤고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삿 10:10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삿 10:16에서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였습니다. 여기 ‘근심하시니라’는 히브리어 ‘카차르’로, ‘조마조마하여 참을 수 없다, 마음이 조급하다, 슬프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죽어 가는 자식을 위해 불 속에라도 뛰어 들어가고픈 부모의 심정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타는 듯한 뜨거운 긍휼을 묘사한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실된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사사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2. 입다는 암몬으로부터 학대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삿 11:1에서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입다의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여기 ‘기생’은 히브리어 ‘자나’로 ‘창녀, 매춘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삿 11:2에서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쫓겨나 돕 땅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삿 11:3에서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돕 땅에 거한 입다에게 잡류들이 모여 와서 그를 추종하였습니다. 여기 ‘잡류’는 ‘방탕한 사람들, 일정한 거처없이 돌아다니는 사기꾼들, 천박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러나 삿 11:5-6에서 “(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길르앗 장로들이 암몬과의 전쟁을 위하여 입다에게 장관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 것을 볼 때, 입다는 잡류들과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신앙으로 선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르앗 장로들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당신이 우리의 머리가 되리라라고 약속하자, 입다는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라고 투철한 신앙으로 답변을 하였습니다(삿 11:8-9). 또한 장로들과 백성들에 의해서 머리와 장관으로 세움을 입었을 때, 삿 11:11에서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입다는 자신의 온 마음을 하나님의 얼굴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즉 입다는 암몬과의 국가적인 큰 정쟁을 앞두고 자신의 상황을 다 하나님께 아뢰며 승리를 위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언제나 자신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입다에게 삿 11:29에서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그 결과 삿 11:32-33에서 “(32)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33)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입다는 암몬으로부터 학대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입다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절망이었습니다.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기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장하면서 본처의 자식들에게 수많은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기업을 상속받을 때, 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쫓겼나 자기 고향에서도 살지 못하였습니다. 입다의 삶은 삶 자체가 절망이었지만,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 곧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입다는 언제나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히브리어로 ‘이프타흐’로, 그 뜻은 ‘그가 여실 것이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실 것이다’입니다. 입다는 비록 기생의 아들로 멸치 천대를 당하며 서자의 설움을 받고 자랐지만, 그는 항상 자신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열어 주신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강하게 훈련시키셔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사사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입다의 삶은, 불우한 환경이 결코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지금 어떠한 불우한 환경 가운데 있다 할찌라도 입다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므로 여러분의 불우한 환경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나타내는 축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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