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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이삭이 증거하는 예수님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4. 9. 4. 11:59

이삭이 증거하는 예수님

18:10-14

 

5:39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삭의 삶도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의 무엇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을까요?

 

1. 이삭의 출생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8:11 표준새번역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고, 사라는 월경마저 그쳐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눅 1:34에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리아 또한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이므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마 1:18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삭의 출생은 예수님의 출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8:14 하반절에서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기한이 이를 때에 이삭이 출생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기한이 이를 때에는 히브리어 카에트 하야, ‘생명의 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계절적으로는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카에트 하야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18:14에서는 카에트 하야와 함께 정해진 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모에드가 함께 사용되어서,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때가 바로 내년 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세기경 편찬된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 랍비 여호수아는 이삭이 유월절에 태어났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삭이 봄 절기인 유월절에 출생하였듯이, 고전 5:7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이 땅에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희생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삭의 출생은 예수님의 출생을 증거하고 있고,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는 반드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 21:1-2에서 “(1)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14에서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라고 믿을 때,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의 기적적인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핍박 받은 이삭의 삶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1:9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삭은 형제 이스마엘에게 희롱을 당하였습니다. 여기 희롱하는지라는 히브리어 차하크, ‘놀리다, 조롱하다, 비웃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엘(강조) 분사형으로 사용되어서, 이것은 아주 심하게 모욕적으로 놀리고 조롱하는 것뿐 아니라 폭력을 수반하는 행위까지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이삭이 형제 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받았듯이, 7:3-4에서 “(3)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도 형제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서로를 형제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 7:1에서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형제 유대인들에게 죽을 정도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형제에게 핍박 받은 이삭은, 장차 형제들에게 핍박 받게 될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 4:28-29에서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러한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마엘과 같이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이삭과 같이 성령을 따라 난 자들 곧 약속의 자녀들을 핍박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되고 약속의 자녀들은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는 핍박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6:8).

 

결론> 이삭의 순종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립니다. 그래서 창 22:6에서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22:9에서“..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삭을 결박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삭은, 버지 아브라함에게 어떤 원망도 어떤 반항도 하지 않고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이 침묵 속의 순종은, 19:17에서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장차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말없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순종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11:19 표준새번역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버지 말씀에 절대순종했던 이삭은 믿음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고전 15:4에서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말씀하고 있듯이,아버지 말씀에 절대 순종했던 예수님은 진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아버지 말씀에 절대 순종할 때, 우리의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고 죽었던 몸이 살아나고 죽었던 삶이 살아난다라는 것을 믿으시고, 버지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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