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제사로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구속사 성취에 힘쓰는 교회"

생명의 양식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4. 10. 20. 12:39

<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23:26-31

 

본문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길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23:13-14에서 ‘(13)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눅 23:16에서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라고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했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23:22-23에서 ‘(22)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23)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눅 23:24에서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구하는 대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3:26에서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십자가 형을 받은 죄수가 집행장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지만 예수님은 너무나 많이 맞으셔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27:26에서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후부터 로마 군병들은 무서운 채찍으로 예수님을 내리쳤습니다. 당시 채찍은 굵은 것은 세 가닥이고 얇은 것은 아홉 가닥으로서 채찍 끝에는 날카로운 뼈조각이나 쇳조각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채찍질을 가할 때마다 몸에서 생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마 27:29에서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워서 예수님 얼굴은 피범벅이 된 상태입니다. 메시야 수난을 예언한 시 22:6에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맞으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사람이 코피만 흘려도 현기증이 나고 제대로 서 있질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서 피를 흘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가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병들이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에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고, 예수님은 그러한 상황에서 당신을 따라오며 우는 무리에게 눅 23:28에서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육신의 고통 중에서 그리고 이제 당신이 어떻게 죽으시는지를 다 알고 있는 그 정신적인 고통 중에서 예수님은 자신보다 먼저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요일 4:19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먼저 사랑을 발견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을 향한 동정의 눈물이 아닌 회개의 눈물을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눅 23:29에서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예루살렘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자녀를 잃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집집마다 자녀가 죽어 나가는 고통이 임하기 때문에 그 날에는 자녀가 없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날이 이르면이 날은 1차적으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주후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의 집집마다 자녀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날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는지 눅 23:30에서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혹독한 환난이 즉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 임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자기 땅에 오신 메시야 곧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을 거부하고 핍박하고 나아가 십자가에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십자가의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지금까지 믿지 못한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다가올 심판을 깨어서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눅 23:26-31의 예수님의 말씀은 1차적으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예언으로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종말 성도를 대상으로 한 예언으로서 마지막 때 있을 큰 환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 24:21-22에서도 ‘(21)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 마지막 환난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눅 23:31에서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푸른 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푸른 나무에서 떨어져 마른 나무 같은 인생이 된다면 마지막 불 같은 시험과 환난을 절대로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당신을 포도 나무에 비유하시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5:4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6에서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날마다 푸른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서 자신과 자녀들의 신앙의 전진을 위해 믿음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0) 2024.11.18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0) 2024.11.18
독생자 예수  (0) 2024.10.20
너희 믿음을 확증하라  (0) 2024.10.20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0)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