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
딤후 3:1-5
딤후 3:1에서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말세는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말세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전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때도 말세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로 인한 고통입니까? 바로 사람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딤후 3:2-5에서 19가지 인간 타락상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후 3:5에서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19가지 인간 타락상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서 돌아서라는 의미도 되지만 바로 우리 안에 19가지 인간 타락상이 있다면 즉시 거기서 돌아서라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이 시간 후자의 관점으로 19가지 인간 타락상을 살펴보면서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즉시 돌아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딤후 3:2-5에 나오는 19가지 인간 타락상을 살펴보면, ① ‘자기를 사랑하며’입니다. 이것은 자기만을 위한다는 의미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눅 14:26에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제자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서 돌아서야 됩니다. ② ‘돈을 사랑하며’입니다. 딤전 6:10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데, 말세에는 불신자 뿐만 아니라 신자들까지도 돈을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③ ‘자긍하며’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알라존’입니다. 그 뜻은 ‘허풍쟁이’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자기 자신을 실제 이상으로 포장하고 과장해서 말하는 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④ ‘교만하며’입니다. 교만한 자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는데 마치 자신이 믿음 위에 서 있다라고 자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고전 10:12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⑤ ‘훼방하며’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블라스페모스’입니다. 그 뜻은 ‘모독하며’입니다. 모독은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행 6:11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에서 모독하다가 바로 헬라어 ‘블라스페모스’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⑥ ‘부모를 거역하며’입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자식들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집마다 애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부모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거기서 돌아서야 됩니다. ⑦ ‘감사치 아니하며’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아카리스토스’입니다. 그 뜻은 ‘은혜를 모르는’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⑧ ‘거룩하지 아니하며’입니다. 거룩은 죄와 구별된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죄와 구별된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죄와 구별된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실존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⑨ ‘무정하며’입니다. 무정하다는 것은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가족 친척 중에 아픈 사람은 없는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⑩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입니다. 엡 4:26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말세에는 사람들이 한번 원통한 일을 당하면 절대 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⑪ ‘참소하며’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입니다. 그 뜻은 ‘중상자’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계 12:9에서는 ‘마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해서 서로 중상모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⑫ ‘절제하지 못하며’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세 사람들의 특징은 사납다라는 것입니다. ⑬ ‘사나우며’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야수 같은 사람, 짐승 같은 사람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⑭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입니다. 이것은 선한 사람이나 선한 일을 증오하는 것으로 악을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⑮ ‘배반하여 팔며’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도테스’입니다. 그 뜻은 ‘배반자, 배신자’입니다. 눅 6:16에서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에서 바로 ‘파는 자’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스승도 팔아버리는 배은망덕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⑯ ‘조급하며’입니다. 잠 14:29에서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조급한 것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⑰ ‘자고하며’입니다. 자고하다는 것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줄 정도로 자기애에 도취된 상태를 말합니다. ⑱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에 쾌락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19번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⑲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19가지 인간 타락상이 우리 안에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삶에 고통이 많아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발견하는 즉시 돌아서시므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여러분에게는 은혜의 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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