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아바림의 구속 경륜
민 21:10-12, 33:44-45
이예아바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37번째 진을 친 곳으로서, 세렛 골짜기(세렛 시내)와 가까이 접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예아바림에 친 이스라엘의 진의 규모가 세렛 골짜기까지 미쳤습니다(민 2:11-12). 그러므로 이예아바림과 세렛 골짜기는 동일한 장소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세렛 골짜기 곧 이예아바림은 오늘날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예아바림의 뜻은 ‘폐허의 길’입니다. 그런데 민 21:11에서 “..모압 앞 해 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장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폐허의 길’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해 돋는 편 광야’가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노정은 이와 같이 상반된 두 길로 갈라졌는지, 오늘날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그것을 상고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예아바림이 폐허의 길이 된 사람들
이예아바림이 폐허의 길이 된 사람들은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았던 군인들 곧 출애굽 1세대들입니다(민 14:29-30). 신 2:14에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세대 전부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여야 했습니다. 14번째 진을 친 릿마 곧 가데스에서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 1:21). 그런데 1세대들은 그 말씀 앞에 이유를 달았습니다. 거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앞세워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습니다. 정탐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취지 못하리라,,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백성들에게 악평을 쏟아냈습니다(민 13:31-33).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원망케 하였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열 명의 정탐꾼은 다음 날 하나님이 재앙으로 죽이셨습니다(민 14:36-37). 그리고 나머지 1세대들은 원망으로 인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민 14:2-3에서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1세대들이 다 일어나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집단 반란이었습니다. 민 14:4에서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갈아치우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려 했습니다. 그 목적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뒤로 돌아서 애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민 14:29-30에서 “(29)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1세대들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무너뜨린 것과 원망의 죄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세렛 시내 곧 이예아바림을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세대들에게는 이예아바림이 ‘폐허의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2. 해 돋는 편 광야가 된 사람들
출애굽 1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광야 2세대들에게는 이예아바림이 ‘해 돋는 편 광야’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37번째 진 친 이예아바림을 지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신앙을 소유하였기에 해 돋는 편 광야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민 32:12에서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순종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철저히 따랐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민 32:12절을 표준 새번역은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나 주를 철저히 따랐으므로 예외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따르고, 말씀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하면, 심판이 찾아옵니다. 약 5:9에서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출애굽 1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원망을 버리고 하나님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 돋는 편 광야를 맞이한 또 다른 사람들은 광야 2세대들입니다. 2세대들은 1세대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 정복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새 시대를 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새 사람입니까? 엡 4:22-24에서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불평과 원망, 애굽으로 돌아가고 픈 불신의 생각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새 사람입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성화되어 가는 사람이 새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해 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을 지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결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해 돋는 이예아바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1세대들은 하나님을 원망한 죄로 인해서, 가데스에서 다시 가데스로 돌아오기까지 38년이나 돌고 도는 광야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시간이자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32번째 진 친 ‘가데스’의 뜻은 ‘거룩히 구별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세대들이 38년의 광야 노정의 연단과 훈련을 통하여서, 다시 가데스에 돌아왔을 때는 ‘거룩히 구별된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35번째 진을 쳤던 ‘부논’에서 다시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민 21:5). 35번째 진 친 ‘부논’의 이름의 뜻은 ‘해가 지다’입니다. 그 이름의 뜻처럼, 출애굽 1세대들의 신앙 노정의 결과는 해가 지는 것으로 마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 21:9에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부논에서 다시 살아나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은 우리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불평과 원망, 어떠한 죄악 가운데 살아왔다 할찌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다시 우리의 삶이 살아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돋는 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보시므로, 여러분들의 남은 생애는 해 돋는 편 이예아바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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