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감사 >
시 50:23
시 50:23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를 표준 새번역은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2024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떠한 감사로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까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감사는 어떤 감사입니까?
1. 깨닫는 마음의 감사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수십만원,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바친다고 해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분명히 수십만원,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시 49:20에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깨닫지 못하는 마음은 짐승의 마음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감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이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눅 12:16-17에서 ‘(16)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부자는 소출이 너무나 풍성하여 고민하던 중 이렇게 하기로 다짐을 합니다. 눅 12:18-19에서 ‘(18)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부자가 곡간을 크게 짓고 수확한 것을 가득가득 쌓아 놓고 ‘내 영혼아, 이만하면 자손만대 잘 살 수 있겠지’라고 자만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뭐라고 지적해 주셨습니까? 눅 12:20-21에서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부자는 밭의 모든 소출이 다 자기의 능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햇빛을 주신 하나님, 때마다 비와 이슬을 내려 주신 하나님, 농사를 망치지 않도록 깜부기와 곰팡이를 막아 주신 하나님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깨닫지 못하는 부자에게, 그래서 하나님에게 부요치 못하는 부자 즉 감사를 잃어버린 부자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시 69:30-31에서 ‘(30)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31)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는 마음으로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비록 작은 예물이지만 깨닫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를 더욱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몸으로 실천하는 감사입니다.
어느 날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눅 7:36에서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순수한 마음으로 초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자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죄인인 한 여자’가 오늘날로 말하면 ‘윤락 여성’이 예수님 뒤로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풀어가지고 예수님의 발을 씻고 예수님 발에 입을 맞추면서 아무 말없이 우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그 모습을 보고 ‘옳거니, 내가 시험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예수가 진짜 하나님이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꽤씸한 년, 나가’하고 호통을 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여자를 마음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눅 7:39에서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자 했던 바리새인은 예수님과 여자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닌 선지자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 바리새인은 영의 눈이 아닌 육의 눈으로 예수님과 그 여자를 바라보므로 믿음에서 실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눅 7:37-38에서 ‘(37)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여자가 예수님에게 행한 이 사건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해 보겠습니다. 먼저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들어온 것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다는 것은 철두철미한 감사, 빈틈없는 감사를 나타냅니다. 또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는 것은 봉사와 헌신을 의미하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절대적인 사랑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여자가 예수님에게 행한 행동에는 회개와 감사와 봉사와 헌신과 사랑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여자는 마음으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감사로 예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눅 7:50에서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평생 죄 때문에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던 그녀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그녀에게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이 나아와 감사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동일한 축복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즐거움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고후 9:6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농사 짓는 것 즉 씨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감사는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 9:7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연초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시고, 입혀 주시고, 먹여 주시고, 힘 주시고 소망주신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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