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
엡 6:1-3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서양 격언에 ‘요람을 움직이는 손이 세계를 움직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역사는 어머니들의 손에 좌우된다는 뜻으로서, 훌륭한 인물은 훌륭한 아버지와 훌륭한 어머니가 계신 가정에서 배출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공동체가 바로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모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입니다(창 18:19). 그리고 하나님이 자녀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 즉 부모에 대한 효입니다.
첫째, 효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그래서 본문 엡 6:2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첫’은 헬라어 ‘프로토스’인데, 그 뜻은 ‘첫째의, 최고의, 중요한’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 즉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로 보시고, 최고로 치시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셔서 짐승처럼 매를 맞으시고,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시고, 가시관에 찔림을 받아 죽어가는 중에서도, 십자가 밑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시며 마지막까지 효를 실천하셨습니다(요 19:26-27). 예수님은 죽어가는 중에서도 즉 효를 실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효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고 물질을 주셔서 효를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효를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모님을 가볍게 경솔하게 대하는 자녀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들이 있었다면 반드시 이 세상 떠나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친구의 사랑, 부부의 사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모님의 사랑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부모 사후에 잘 받드는 것을 효라고 했지만, 우리 기독교는 살아 생전에 지성을 다해 부모님을 봉양하고 공경하는 것을 효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 23:25에서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해 효를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불효자가 받는 벌입니다. 신 21:18-21에서 ‘(18)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19)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21)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구약 때에는 부모님을 거역하고 불효하는 자식은 재판도 필요 없이 동네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한 계명을 몰랐다고 나중에 핑계를 댈까봐, 신 27:16에서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라고 하나님이 계명을 가르쳐 주시고 모든 백성에게 아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볼 때, 부모에게 불효한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천하에 미남이며 용장이었지만, 왕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아버지를 배신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아버지를 상대로 반역을 일으킨 불효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하 15:30에서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버지 다윗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맨발로 울면서 왕궁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그런 아버지를 끝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삼상 17:2-4). 그러나 다윗은, 삼하 18:5에서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전쟁에 나가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삼하 18:33에서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바로 다윗의 이 모습이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요 나아가 죄악 된 우리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요 13:1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남은 생애 나 위해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께, 나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아버지께, 효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면 잘되고 장수합니다. 오늘 본문 엡 6:3에서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잘 된다’는 것은, 잠 1:8-9에서 ‘(8)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존귀와 풍요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 또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모님을 공경하므로 장수와 존귀와 풍요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0) | 2025.05.18 |
---|---|
아사의 종교 개혁 (0) | 2025.04.18 |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겨진 백향목 가지 (0) | 2025.04.18 |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0) | 2025.04.01 |
밭에 감추인 보화 (0) | 2025.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