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걸어가라
요 5:1-9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베데스다 연못을 하나의 사회로 볼 때, 과연 베데스다 연못은 어떤 사회입니까? 첫째, 병든 사회입니다. 요 5:2-3에서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베데스다 연못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거기에 38년 된 병자도 누워 있었습니다(요 5:5). 아파 본 사람이 아파 본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베데스다 연못은 육신의 병과 정신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병든 사회였지만 인간의 정이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은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나누는 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베데스다 연못은 기회주의자들이 사는 사회를 나타냅니다. 요 5:3-4에서 ‘(3)..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베데스다 연못에 수많은 병자들이 찾아온 이유는 물의 동함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전설이 그곳에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전까지 형님 아우, 언니 동생 하며 서로를 위해 주다가도 물이 동하기만 하면 언제 알았냐는 식으로 서로 먼저 물에 뛰어들어가는 베데스다 연못은 기회주의자들이 사는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셋째, 베데스다 연못은 치열한 경쟁 사회를 나타냅니다. 물이 잔잔할 때는 서로 너무나 잘 지냅니다. 그러나 물이 동하는 순간 베데스다 연못에는 눈물도 동정도 없습니다.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병든 내 가족이 병에서 나아야 하기 때문에 물이 동하면 베데스다 연못은 서로 끌어당기고 밀어 제치고 넘어뜨리고 짓밟고 면도날 같이 날카롭고 엄동설한 같이 냉혹한 사회로 바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베데스다 연못 같은 사회가 아닙니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1인자가 되기 위해서, 누군가를 끌어당기고 밀어 제치고 넘어뜨리고 짓밟고 면도날 같이 날카롭고 엄동설한 같이 냉혹한 사회가 아닙니까? 이 세상은 정을 나누되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정을 나누는 그런 사회라 할지라도 교회만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갈 5:6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오늘 우리의 교회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교회 즉, 눈물과 동정이 살아 있는 자비의 집, 은혜의 집, 베데스다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통하여 버림받은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요 5:1에서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명절에 예루살렘을 찾으셨습니다. 여기 ‘명절’은 헬라어로 ‘헤오르테’로서 ‘축제, 잔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며 잔치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한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38년 된 병자입니다. 요 5:6에서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38년 된 병자는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요 5:7). 물이 동할 때에 자신을 물에 넣어 줄 가족도 친척도 지인도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 5:5에서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3년 8개월이 아니라 38년째 병으로 인해 누워 있는 사람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가족도 친척도 지인들도 그를 다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곁을 다 떠났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될 때에, 그 때 바로 주님이 여러분 앞에 찾아와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찾아와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즉, 나를 택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 15:16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내가 예수님을 찾아서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당신을 믿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 중에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는 말씀과 같이(고후 5:7), 지금 우리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날마다 천성을 향해 일어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11월 30일 주일 조인호목사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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