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가정
몬 1:1-7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인생들에게 안식과 행복의 원천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와 국가의 기본 단위인 가정입니다. 창 2:18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인류의 역사는 에덴동산의 한 가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자식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안식과 행복도 잃어버렸습니다. 곧, 죄로 인하여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눅 19:9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고 삭개오 가정에 축복을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라와 교회의 문제를 놓고 걱정하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정이 모여서 교회와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에 각자 내 가정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자동적으로 교회와 나라도 바로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정화를 부르짖기 전에 가정의 정화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화합을 강조하기 전에 내 가정이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레몬의 가정이 바로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빌레몬의 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상적인 가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빌레몬의 가정이 이상적인 가정일까요?
첫째, 빌레몬의 가정은 가장이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가 올바르게 서려면 먼저 대통령이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한 교회가 올바르게 서려면 먼저 목사가 바로 서야 하듯이, 한 가정이 올바르게 서려면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이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들의 아버지였던 빌레몬은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가정을 반석 위에 세웠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었으며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특별히 몬 1:1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이라고 기록되었듯이, 그는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입었던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리고 몬 1:2 하반절에서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빌레몬의 집이 당시 교회였습니다. 그 집은 공개된 집으로서, 누구든지 그 집에 들어오면 평안함을 얻고 기쁨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것을 몬 1:7에서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은 신앙의 사람, 사랑의 사람, 근면한 사람, 경건한 사람, 봉사 정신이 강한 사람, 협동적인 사람, 창조적인 사람, 포용적인 사람, 아내에게는 모범적인 남편, 아들에게는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 이렇게 빌레몬이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에 즉, 가정의 가장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의 태양이 늘 그 가정에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의 가정에는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 4:2에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는 말씀과 같이, 오늘 우리 교회의 가장들도 빌레몬을 본받아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함으로 의로운 해가 떠올라 빛을 발하여 날마다 가정이 밝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빌레몬의 가정에는 훌륭한 주부가 있었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는 것은 남편에게 달려 있지만 그 곁에서 내조하는 아내의 역할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 12:4에서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몬 1:2에서 ‘자매 압비아’라고 기록되었듯이, 빌레몬의 아내의 이름은 압비아입니다.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들의 어머니, 곧 가정의 주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볼 때, 가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녀가 훌륭한 주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단순히 이름만 언급하지 않고 ‘자매’라고 부른 것을 볼 때, 그녀 또한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남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생명 다하여 충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압비아를 이처럼 특별한 여자로 우대한 이유는, 그녀가 남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말없이 내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내조가 없이 어찌 빌레몬이 사도 바울을 따라다니며 복음을 각처에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자기 집을 교회로 내어놓는 일 역시 아내의 협조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처럼 압비아는 남편의 사역을 묵묵히 뒷받침하며 성경이 말씀하는 돕는 배필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든 가정도 이들 부부처럼 아름다운 믿음의 동역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빌레몬의 가정에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있었습니다. 몬 1:2에서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사도 바울은 빌레몬과 압비아의 아들인 아킵보를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불러 준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은 많지만, 딤후 2:4에서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었듯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킵보는 단순히 부모 따라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난 아킵보는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항상 삶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들도, 말씀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 땅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이 땅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날마다 아버지의 기쁨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성장해가는 아킵보와 같은 자녀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5월 3일 주일 조인호 목사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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