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 19:23-27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효는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선이자 가장 아름다운 덕목으로 인류 보편의 양심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 속에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십계명 중, 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룬 계명입니다. 그리고 5-10계명까지는 사람 사이의 의무를 담은 대인 계명입니다. 그런데 대인 계명 중에서 첫 자리에 위치한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를 망각한 자녀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마저 망각하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눅 2:51에서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어릴 적부터 장성하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육신의 부모를 받들어 섬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효,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성경적인 효는 무엇입니까?
첫째, 부모님을 구원의 반열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 19:23에서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오늘 본문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고통스럽고도 엄숙한 현장입니다. 십자가 곁에는 네 명의 여자와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입니다(요 19:26). 여기 ‘여자여’는 헬라어 ‘귀나이’로서 당시 여성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이 단어 자체에는 ‘어머니’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시면서 ‘어머니’라는 호칭 대신 ‘여자여’라고 부르셨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예수님이 ‘여자여’라고 부르신 사건들을 살펴보면, 먼저 가나안 여자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 주실 때 예수님이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마 15:28에서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 고통받는 여자를 고쳐 주실 때도 예수님이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눅 13:12에서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도 예수님이 ‘여자여’라고 부르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요 8:10-11에서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여자여’라고 부르신 후에 그들을 귀신, 병,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머니’라는 호칭 대신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도 ‘구원’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즉 온 인류의 구원자로 십자가에 달려 계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그리스도로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 부르시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구속 역사를 성취하는 최대의 순간에 이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넘어 여자와 속죄의 구주라는 영원한 생명의 관계를 맺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친을 구속 받는 자의 대열에 앉히시는 순간입니다. 이보다 더 큰 효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님을 구원의 반열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효이며, 참된 효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도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을 전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되갚아 드리는 이 땅에서 가장 복된 효자와 효녀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부모님에 대한 도리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요 19:27 상반절에서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인 사도 요한을 가리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십니다. 당시 마리아는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장남이셨던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돌볼 사람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었습니다(마 13:55-56). 그러나 요 2:24-25에서 ‘(24)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고 기록되었듯이, 친히 모든 사람의 속을 아시는 예수님이 볼 때 어머니를 끝까지 책임지고 모실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믿음직한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셨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마지막 그 유언을 받들어서, 요 19:27 하반절에서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어머니의 영혼 구원 뿐만 아니라 자녀로서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효도의 도리 또한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완수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효는 부모님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결론, 성도는 예수님을 본받아 효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신 채, 온몸의 피를 쏟으시며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효를 끝까지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하나님이 말씀하신 부모 공경의 명령에 반드시 순종해야 함을 잊지 마시고,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5월 10일 주일 조인호목사 설교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