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으로 에녹은 >
창 5:21-24
창 5장 족보를 보면, 죽음이 당연한 듯 모두 ‘죽었더라’로 내려오다가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고 기록되었듯이, 죽음이 에녹은 이기지 못하였습니다(창 5:23). 히 11:5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 승천하였습니다. 그 승천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어떠한 신앙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을까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첫째, 에녹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었습니다. 창 5:22에서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기록되었듯이, 성경은 특별히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세상에 끝이 온다’입니다. 어느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이렇듯 섬뜩한 종말적 의미를 지닌 이름을 부여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므로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에 임할 홍수 심판에 대한 계시를 하나님께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에녹에게 주신 계시대로 므두셀라가 죽자 세상에 심판이 임하였습니다. 므두셀라가 라멕을 얻었을 때가 187세(창 5:25), 라멕이 노아를 얻었을 때가 182세(창 5:28), 그리고 노아 600세에 홍수가 내렸으니(창 7:6), 187+182+600=969세입니다. 창 5:27에서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기록되었듯이, 므두셀라는 969세에 죽었습니다. 홍수가 일어났던 해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의 출생은 홍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 곧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그 계시를 즉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변함없이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살전 2:13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받고 믿으므로 말미암아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동행하는 가운데 말씀의 역사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에녹은 회개하였습니다. 창 5:21-23에서 ‘(21)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65세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고, 65세부터 365세까지 동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이 65세에 믿음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홍수 심판의 계시뿐만 아니라 재림 때에 일어날 마지막 심판의 계시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유 1:15에서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었듯이, 에녹은 당시 팽배했던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말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계시를 받았고, 또 에녹이 사람들에게 이러한 심판의 예언을 하였다면, 가장 먼저 그가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에녹은 65세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말과 일로 하나님 앞에 죄지었던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과의 본격적인 동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말을 다 내어놓고 철저히 회개하므로 하나님과 참된 동행이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성도는 끝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저마다 사는 것이 비슷한 것 같지만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끝이 달라집니다. 마 24:40-41에서 ‘(40)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었듯이, 이 땅에서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끝이 달라진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에녹은 끝을 보고 신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 승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끝이 다르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마 24:42-43에서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 날에 에녹과 같이 데려감을 당하는 자 곧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자는 깨어 있는 자입니다. 성경 보고, 기도하고, 성전에 나와 예배 드리고, 직분에 충성을 다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깨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도 에녹과 같이, 끝을 바라보며 날마다 깨어 있는 신앙으로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주님과 즐거운 동행을 해 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5월 24일 주일 조인호목사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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