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신 예수
히 3:1
히 3:1에서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기록되었듯이,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강조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구약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서 그분의 모습과 사역이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여덟 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네 번째 환상이 슥 3장에 기록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입니다. 슥 3:8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고 기록되었듯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은 예표의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에 대한 예표의 사람입니까? 먼저,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그의 동료 제사장들은, 벧전 2:9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대속 사역으로 제사장이 된 성도들에 대한 예표입니다. 이어서 스가랴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두 가지로 표현하였습니다.
첫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순으로 오십니다. 슥 3:8 하반절에서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순’은 히브리어 ‘체마흐’로, 나무의 가지에서 막 돋아나는 싹, 땅에서 솟아나오는 움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이 ‘체마흐’는 메시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사 4:2에서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렘 33:15에서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기록되었듯이, 여호와의 ‘싹’, 한 의로운 ‘가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 너무도 약하고 보잘것없이 비천한 모습으로 오실 것을 가리킵니다. 사 53:2에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하였습니다. 정말 이 예언된 말씀대로,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 있을 곳이 없으므로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는 구유에서 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시자마자 헤롯 왕이 죽이려고 해서 애굽까지 멀고 먼 피난길에 오르셨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후에도 유대 땅이 아닌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이 땅에 온 메시아의 모습은 너무나 약하고 보잘것없고 비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순’이 장차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을 스가랴서는 예언하였습니다. 슥 6:12에서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승리를 통하여 신약 교회를 이루시고, 마지막에 재림하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을 의미합니다. 슥 6:13에서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라고 기록되었듯이, 오늘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전 세계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영광을 얻고 계십니다. 그분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그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돌로 오십니다. 슥 3:9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새기며’는 히브리어 ‘파타흐’로, ‘열다, 찢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즉, ‘한 돌이 찢겨지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머리는 굵은 가시에 찢기시고, 손과 발은 못에 찢기시고, 옆구리는 창에 찢기셨으며, 찢기신 그 성체에서 인류를 구원할 영원한 새 언약의 피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한 돌이 찢기신 결과 이 땅의 죄악이 하루에 제하여집니다. 여기 ‘하루’는 구약의 대속죄일이 예표하는 완전한 구속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바로 그날이며, 궁극적으로 주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그리고 ‘한 돌’에는 일곱 눈이 있습니다. 계 5:6에서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기록되었듯이, 재림하시는 주님인 어린 양도 일곱 눈이 있습니다.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빛의 역사, 완전한 성령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시대마다 부분적으로 밝히시던 역사(히 1:1)와는 달리, 주님이 재림하시면 완전하신 빛과 영의 역사로 온 세상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시고 온 우주의 어둠을 몰아내시며 영원한 빛을 발하실 것입니다. 슥 14:7에서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어 영계가 혼탁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올라 결국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은 예언된 말씀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바로 그 날에, 살전 4:16-17에서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과 같이, 성도들은 부활과 변화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으로 영화롭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제사장 된 성도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서두에서 살펴봤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고, 우리는 그 분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히 4:14에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난 다음에, 히 4:16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때를 따라’는 헬라어 ‘유카이로스’로, ‘적시의, 적절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 주셨듯이(신 11:14),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는 자에게 각각의 때마다 필요 적절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4월 26일 주일 조인호 목사 설교말씀

'생명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0) | 2026.06.02 |
|---|---|
| 이상적인 가정 (0) | 2026.06.02 |
| 여호수아가 증거하는 예수님 (0) | 2026.06.02 |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0) | 2026.04.20 |
| 부활의 역사적 의미 (0) |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