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제사로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구속사 성취에 힘쓰는 교회"

생명의 양식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3. 4. 9. 12:36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21:1-11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21:9-10에서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오늘 종려주일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보이는 면에서는 과히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가장 쓸쓸하고 외로웠던 날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단하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주님을 환호하며 따르는 제자들과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열광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각기 다른 것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Designed by Freepik

 

1.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득했습니다.

12:13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하여 사망 권세를 박살내러 오신 만왕의 왕으로 영접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곧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평생 해결시켜 줄 이 땅의 왕으로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요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단번에 해결하시자, 사람들은 주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6:15).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6). 여러분, 빌라도에게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외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주님을 환영하며,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사람들입니다(15:12-14). 그러나 주님이 무력하게 죄인의 모양으로 붙잡히게 되자, 그들의 환호는 불과 5일만에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시면 예수는 그들에게 왕이고, 해결하시 못하면 예수는 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적인 믿음이 오늘 종려주일 주님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도 주님께 감사하는 절대적인 믿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에는 시기가 가득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까? 말도 아니요 나귀도 아니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33세의 청년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올라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뒤뚱뒤뚱나귀 새끼도 힘들고, 그 위에 타신 예수님도 균형 잡느라 힘이 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굳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그것은 구약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 12:14-15에서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15)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슥 9:9에 있는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접해야 됩니까?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알아보고 영접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 많은 백성들을 충동해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15:11에서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까? 27:18에서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바로 시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리드는 것을 종교 지도자들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 예수만 없으면, 우리에게 저 사람들이 다 올건데이런 어둠의 생각이 그들을 지배하였습니다. 여러분, 시기심이 가득하게면 영적 눈을 멀게 합니다. 왜 성경을 연구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대로 오신 메시야를 몰라보고 죽였습니까? 그들 안에 있는 악한 시기심이 그들의 영적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시기심은 나의 영적 눈을 멀게 하고 더 나아가 주님을 고독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번 고난주간 우리 안에 있는 시기심을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3. 제자들의 마음에는 자기가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3년 동안 함께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곧 예수님으로 가득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 날까지 주님 앞에서 싸웠습니다. 22:24에서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각자 자기 자신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 마음에는 자기가 가득했을까요? 그 이유는, 말씀을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려 세 번이나 당신이 십자가에 처참히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9:22, 9:31-32, 18:31-34).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18:34에서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하면, 제자들처럼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제자들처럼 주님을 부인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말씀을 귀 담아 들으시고 정확히 깨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면, ‘먹고 사는 문제로 주님을 배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면, ‘시기로 메시야를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과 3년 동안 함께하며 말씀을 받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면, 서로 다투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부인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는 입성하셨지만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입성하시지 못하셨습니다. 바라옵기는 이번 고난주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발자취를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시므로 우리 각자가 신령한 예루살렘이 되어서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꼭 입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르우벤이 주는 구속 교훈  (0) 2023.04.22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0) 2023.04.22
진정한 회개  (0) 2023.04.02
구름기둥 불기둥  (0) 2023.03.20
하나님과 연합된 성도  (0) 202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