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관계
마 5:23-24
본문에서 예수님은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특별히 ‘화목한 관계’를 강조하셨습니다. 마 5:23-24에서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보다 사람과 화목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화목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드리는 예배가 아버지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되려면, 인간 관계도 잘 해야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화목을 강조하셨을까요?
1. 화목한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영적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마 5:23)” 곧 “형제와의 화목을 깨뜨리는 일(마 5:24)”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마 5:22). 그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첫째, 형제에게 화 내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형제의 인격을 말로 모독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 멍텅구리)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 형제의 믿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놈(믿음이 없는)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한 관계를 깨뜨리는 이 세 가지는, 영적 살인 죄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 5:21). 살인 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 12:14에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2.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
마 7:12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 존경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남을 존경하고, 남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말 듣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화목을 깨뜨리는 말은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들이 화목을 깨뜨릴까요? “당신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왜 맨날 하는 일이 그래?” 이런 비난하는 말, “주제 파악이나 하세요. 당신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과거까지 꺼집어 내어서 상대방을 경멸하는 말들은 화목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잠 12:18 (공동 번역)에서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아픔을 낫게 하는 슬기로운 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십자가의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고, 화목한 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막 10:45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을 본받아 십자가의 섬김을 실천할 때 가정과 교회, 직장, 모든 생활 현장에서 화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롬 15:1-2에서 “(1)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듯이, 십자가의 섬김은 상대방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 나가는 역사라는 것을 믿으시고, 십자가의 섬김으로 아버지 기뻐하시는 화목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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