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제사로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구속사 성취에 힘쓰는 교회"

생명의 양식

구속사 완성에 힘쓰는 성도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3. 12. 31. 12:43

구속사 완성에 힘쓰는 성도

갈 3:6-9

 

2023년도 교회의 신앙 지표는 “아브라함이 걸어간 믿음의 길을 따라 구속사 완성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고전 3:16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오늘날 예수님 믿는 성도는 영적으로 볼 때 신령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믿음의 길을 따라갈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하루 속히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믿음의 길은 과연 무슨 길일까요? 그것은 바로 “분리의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네 가지의 분리를 통하여서 신앙이 성숙되어져 갔고,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 받아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갈 3:9에서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도 반드시 네 가지 분리에서 승리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모두의 복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무엇과 분리되었을까요?

 

1. 고향과 아비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이곳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지만 우상 숭배의 소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수 24:2에서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이곳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가정을 우상과 분리시키기 위해서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행 7:2-3).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 그리고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은 고향을 떠나 하란이라는 지역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창 11:31).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전에 그들을 하란에 머무르게 하신 이유는, 먼저 그곳에 와 있던 에벨과 같은 경건한 족장들로부터 신앙을 전수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전수받고 이제 가나안 땅으로 떠날 시기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창 11:31 공동번역에서 “데라는..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잡고 살았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데라가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아브라함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 12:1에서 “아비 집도 떠나라”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데라를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분명히 데라는 살아 있었습니다(창 12:4, 11:26, 11:32).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아브라함이 떠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7:4). 이것은 갈 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아버지에 대한 정 곧 육신의 정이 완전히 죽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라”의 이름의 뜻은 “지체하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지체 시키지 않고 구속사 완성에 힘쓰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데라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지체 시키는 육신의 정과 반드시 분리되어야 합니다.

 

2. 롯과 분리되었습니다.

창 12:5에서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은 부자가 되었고, 롯또한 아브라함과 함께하므로 부자가 되었습니다(창 13:1-2). 그래서 가축이 많아져서,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 간에 다툼이 끊이질 않았습니다(창 13:6-7). 그래서 창 13:8-9에서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버지 같은 아브라함이 먼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주고 보살펴 주신 아브라함에게 롯이 어떻게 나와야 됩니까? “삼촌, 아니예요. 삼촌이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제가 이렇게 잘 되었는데, 삼촌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셔야죠. 저는 삼촌이 선택하고 남은 땅으로 가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롯에 입에서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창 13:10에서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롯은 아브라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을 들어서 가장 비옥하고 좋은 “소돔 고모라 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떠났습니다(창 13:11). 롯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롯과 분리되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욕심과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만약 아브라함이 욕심과 분리 되지 못해서 롯과 같이 “소돔 고모라 땅”을 선택했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창 19:24-25에서 “(2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소돔 고모라 땅”을 멸하실 때 아마 아브라함도 그곳에서 사망하였을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약 1:15절의 주인공이 바로 아브라함이 되었을 것입니다.

 

3. 이스마엘과 분리되었습니다.

창 16:16에서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창 16:2에서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낳은 아들이 아니라 사래의 말을 듣고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과의 분리”는 영적으로 “인간적인 생각과 분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21:10,12).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인간적인 생각들을 우리 안에서 날마다 내쫓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롬 8:7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8:6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 안에 이스마엘과 같은 육신의 생각은 쫓아 버리시고 우리의 안을 영의 생각으로 채워 가시므로 날마다 생명과 평안이 넘쳐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이삭과 분리되었습니다.

창 22:2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삭은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였던 마지막 애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과의 분리”는 “가장 애착하는 것과의 분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돈이 이삭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 이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등 가족이 이삭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목숨이 이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애착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바칠 수 있을 때, 창 22:12에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가장 애착하는 것을 구속사 완성을 위해 내놓을 수 있을 때, 창 22:16-17에서 (16)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큰 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바라옵기는 내가 가장 애착하는 그것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늘 기억하는 가운데, 날마다 거룩한 분리를 통하여서 구속사 완성에 힘쓰는 성도가 되셔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던 큰 복이 여러분의 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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