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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마지막 주일에 담긴 구속 경륜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4. 2. 4. 13:05

마 21:1-11

 

본문 마 21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 주일에 관한 말씀으로서, 종려 주일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 것을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떤 나라임을 정확히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확한 결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의 생애 마지막 주일이었던 종려 주일을 통하여, 2023년 마지막 주일을 맞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결산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마 21:9에서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볼 때, 주님은 제 몸하나 가누지 못하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마 21:5). 예수님을 태운 나귀 새끼는 힘이 없어서 비틀비틀 거리고, 그 위에 타신 예수님은 중심을 잡기 위해서 비틀비틀 하셨습니다. 멋있게 말을 타시고 입성하셔도 되는데, 왜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마 21:4에서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슥 9:9에서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주님은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의 체면을 세우는 일보다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군마를 타지 않고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이유는, 당신의 나라가 평화의 나라인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메시야 예언인 슥 9:10에서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병거, 말, 활’은 싸울 때 필요한 전쟁 무기들입니다. 그리고 ‘화평’은 히브리어 ‘샬롬’으로서 ‘평강,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서로 미워하고 분쟁하고 싸우는 나라가 아니라 서로 평강을 빌어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내가 2023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았나? 또 내가 2023년 누군가와 분쟁하며 싸우지 않았나?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결산하는 가운데, 2024년에는 내가 미워했던 사람에게도 그리고 분쟁하고 다툰 사람에게도 평강을 빌어주는 평화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그리스도의 나라는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입니다.

마 21:5에서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슥 9:9에서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왕은 백성에게 명령을 하고, 백성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백성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2023년도 우리의 왕은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셔서,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렸습니까? 아니면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서, 2023년도를 통치하고 다스렸습니까? 2천년 전 예루살렘의 마지막 주일은, 2023년 마지막 주일을 지키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의 왕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나라는 희생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출 13:12에서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초태생의 규례를 맺고 첫 것은 다 하나님께 바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볼 때,나귀의 첫새끼는 죽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레 11:1-8을 볼 때, 나귀는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귀 새끼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어린양으로 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출 13:13에서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귀의 첫새끼’는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 죄악 중에 출생한 모든 인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 1:29).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 중에 출생한 부정한 나귀처럼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고전 5:7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나라 는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마 21:10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종려 주일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부정한 나귀 새끼가 예수님을 만나므로 죽지 않고 살아서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었듯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나므로 죽지 않고 살아서 새예루살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고, 남은 생애 우리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등에 태우고 주의 뜻을 받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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