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제사로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구속사 성취에 힘쓰는 교회"

생명의 양식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산호세푸른초장교회 2025. 8. 3. 02:53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4:27

 

한국 속담에 개미 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미 구멍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개미 구멍 하나로 인해서 나중에는 둑 전체가 무너집니다. 마귀의 유혹도 그와 같습니다. 마귀도 작은 틈을 통하여 유혹하고 유혹해서 결국에는 한 사람의 신앙과 삶을 무너뜨립니다. 4:2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귀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도 유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유혹하지 않겠습니까? 마귀는 우리의 어떤 틈을 노릴까요? 오늘은 마귀의 유혹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성의 유혹이 있습니다. 마귀는 이성의 유혹으로 신앙에 틈이 생기게 하고 결국에는 신앙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까지 무너뜨립니다. 13:24에서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삼손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자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삿 15:14-15에서 ‘(14)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명을 죽이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삼손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아서 혼자서 천 명을 감당하는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가졌던 삼손이, 16:19에서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성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던 힘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삿 16:21에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그가 하루 아침에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성의 유혹에 넘어가면 아무리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정상에 있었던 사람이라도 하루 아침에 추락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음녀의 유혹이 있습니다. 5:3에서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 곧 마귀의 유혹은 꿀처럼 달고 기름보다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음녀의 유혹에 빠지면, 5:1-2에서 ‘(1)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2)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음녀의 말을 들은 결과는 어떠합니까? 5:4-5에서 ‘(4)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5)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셋째, 백성들의 유혹이 있습니다. 23:13-14에서 ‘(13)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떠한 죄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눅 23:23에서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빌라도는 백성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은 모든 믿는 자에게 저주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넷째,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있습니다. 13:22에서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귀는 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내 안에서 말씀이 결실치 못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습니다. 22:42에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마귀에게 어떠한 틈도 주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도 날마다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남은 생애 마귀에게 어떠한 틈도 주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7월 27일 주일 조인호목사 설교말씀

 

'생명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  (0) 2025.08.03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 여호수아  (0) 2025.08.03
범사에 감사하라  (0) 2025.08.03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0) 2025.08.03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0)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