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출 33:17-19
교회에서 자주 접하는 표현 중 하나는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러나 긍휼의 참뜻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긍휼은 무엇입니까?
첫째, 긍휼(矜恤)은 불쌍히 여길 ‘긍’자와 구휼할 ‘휼’자를 씁니다. 그래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책임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인간처럼 감정의 기복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 2:24-25에서 ‘(24)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그들의 후손을 권념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의 비참한 종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롬 3:10-11에서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기록되었듯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그 죄악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먼저 찾을 수도 없으며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엡 2:4-5에서 ‘(4)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일 4:19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기록되었듯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넷째,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의인을 향하셨다면 이 땅에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13).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 곧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은총입니다. 은총은 자격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총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엡 2:8-9에서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 33:19 하반절에서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기록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빌 2:27에서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면 근심 위에 근심이 면해지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8월 2일 주일 조인호목사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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