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18-20
고후 1:20 상반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 7:11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이 “아빠, 나 이거 가지고 싶어”, “엄마, 나 이거 꼭 필요해” 이렇게 조르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사줄께”라고 하며 육신의 부모가 자녀의 소원을 들어주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할 때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그래 내가 알았다”라고 응답하실까요?
1. 언약이 있는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2.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그래 내가 알았다”라고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소돔 성은 남녀 관계, 성관계가 아주 문란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동성연애를 온 동네 사람들이 즐기고 추구했습니다(창 19:1-1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을 유황 불로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 19:23-25). 그런데 심판을 작정하셨지만 실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 롯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 19:22에서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롯이 안전하게 소돔 성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시고 소돔 성을 불로 멸하셨습니다. 여러분, 롯의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창 19:29에서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여기 ‘생각하사’도 히브리어 ‘자카르’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행동으로 롯을 도와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항상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했기 때문입니다. 소돔 성 멸망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창 18:23).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6번이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창 18:22-33). 신 4: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셔서 우리의 기도로 나의 가족, 친척, 친구들이 소돔 같은 세상에서 구원 받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자식도 어릴 때는 부모님에게 달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안 들어주면 삐쳐서 말도 안합니다. 그러나 이제 철이 들면,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고 집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앙이 어릴 때는, 하나님에게 달라고만 합니다. 일방적으로 자기 뜻만을 구하지만, 이제 신앙이 장성하면 그 시각이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가족도 주시고, 교회도 주시고, 직장도 주시고, 안 주신 것이 없는데 나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뭘 하고 있나? 뭘 해야 되나?” 내 뜻만을 구하는 시각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요일 5:14에서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을 표준새번역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는 먼저 예수님, 먼저 교회, 먼저 복음, 먼저 구속사 말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므로, 오늘부터 “그래 내가 알았다”의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의 축복이 우리 삶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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